[밤의 만남에 빛은 비춰지고] 시노 SSR
이름 없는 인연 1화
시노
자.
현자
감사합니다.
와, 좋은 향이 나는 차네요.
시노
루틸에게 받았어.
몸에 아주 좋다면서 추천하던데.
현자
그렇군요.
그럼 얼른 마셔볼까요.
느켁...!?
시노
아하하.
얼굴이 대단하네.
현자
하지만 정말 쓰다고요!
시노는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시노
흐흥, 마실 수 있지.
나는 너처럼 아기 혀가 아니라서.
뭐, 쓰긴 쓰지만...
현자
(저 얼굴...
절대 참고 마시고 있어)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제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고 했죠?
시노
지금 갖고 올게.
히죽 웃으며 시노는 책장과 장식장에서
책 한 권과 나뭇가지를 꽂은 꽃병을 가져왔다.
시노
이 마도서는 아서가 줬어.
같이 공부하자고.
이쪽의 예쁜 나뭇가지는 미틸이 줬어.
숲에서 주웠다고 일부러 갖다 준 거야.
내 애뮬릿에 함께 두라면서.
현자
두 사람 모두 멋진 선물을 줬네요.
시노
그래. 괜찮지?
현자
네, 아주!
예전에 네로가 시노는 기쁜 일이 있으면 보고하러 찾아온다며,
그런 점이 귀엽다고 말했었는데,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시노
오늘 너에게 제일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거야.
현자
이 나무상자는...
엄청 섬세한 세공이 되어 있네요.
예쁘다...
시노
히스가 직접 만들었어, 멋지지.
소중한 걸 넣어둘 상자를 달라고 했더니 금방 만들어줬어.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시노가 상자를 나에게 건네 온다.
살며시 뚜껑에 손을 얹었다.
현자
이거...
전에 제가 만들었던 훈장인가요...?
시노
그거 말고 뭘로 보여.
여기다 넣어두면 간단히 도둑맞진 않겠지.
현자
(그래서 일부러 히스에게 부탁해준 거구나...)
시노... 고마워요.
소중히 여겨줘서 정말 기뻐요.
시노
왜 네가 고마워하는 거야.
고마워해야 할 건 나잖아.
현자
그럴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전하고 싶어서...
시노
희한한 녀석.
뭐, 안심해.
나중에라도 이 빚은 갚을 거니까.
이름 없는 인연 2화
현자
빚...?
시노
받았으면 뭐라도 돌려줘야지.
너뿐만이 아냐. 그 녀석들도다.
시노가 향한 시선 끝에는
조금 전 아서에게 받았다는 책과 미틸에게 받은 나뭇가지가 있었다.
현자
(누군가가 시노에게 선물을 주는 건, 빚이 되는 건가.
그건 왠지 섭섭한 것 같아...)
저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분명 다들 시노가 소중한 친구니까 선물을 주고 싶었을 뿐일 거예요.
시노
왜지.
나만 받는 건 이상하잖아.
현자
그런 게 아니에요.
시노가 기뻐해 주면, 그걸로...
시노
내가 좋아함으로써, 너도 그 녀석들에게 무슨 이득이 있지?
현자
득이랄지, 시노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그걸로 좋아요.
그러니까 아무도 대가 같은 걸 원하지 않아요.
시노
......
시노는 말없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현자
너무 내 생각을 밀어붙이는 것도 안 좋을 것 같아.
시노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 같고...)
클로에
시노, 있어?
잠깐 괜찮을까.
시노
클로에인가. 무슨 일이야.
클로에
상담했던 것 말인데
아, 현자님!
혹시 둘이 이야기하던 중이었어?
현자
그러니까...
클로에
아... 미안.
나 나중에 다시 오는 편이 좋을까?
현자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시노
......
-
현자
하아...
결국 그 뒤로 어색한 채 해산해버렸어.
(저녁 시간에도 시노는 나타나지 않은 것 같고...)
다시 한번, 시노와 제대로 이야기해두고 싶어...
-
히스클리프
현자님, 안녕하세요.
혹시 시노에게 볼일이 있으신가요?
현자
네. 그렇습니다만...
히스클리프
죄송합니다.
저녁쯤 숲 속을 보고 오겠다며 나갔다가 아직 안 돌아왔어요.
아마 순찰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시노가 돌아오면 현자님이 찾으셨다고 전해드릴게요.
이름 없는 인연 3화
현자
시노가 어디 있지.
(결국 숲까지 찾으러 와버렸어...)
별로 시노와 싸운 건 아니지만, 조용히 있던 시노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사실은 누구보다 섬세했을 그를, 무의식적으로 상처 입혔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 때문에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그냥 시노와 친구가 하고 싶을 뿐이라고, 그에게 꼭 전하고 싶었다.
현자
(... 응?
혹시 저 나무 밑에서 자고 있는 건...)
시노
......
현자
시노!
말을 거는 순간 퍼뜩 깨어난 시노가
이내 내 뒤로 날아와 민첩한 동작으로 몸을 구속해 왔다.
시노
내가 자는 사이 덮치다니 배짱이 두둑하군.
이대로 목을 조여주지.
현자
시노, 저예요!
아키라예요!
시노
... 뭐야, 현자였나.
이런 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현자
죄송해요.
시노를 찾느라...
시노
나를?
현자
네.
저기, 시노.
낮의 일 말인데요
시노
잠깐 기다려.
마침 잘 됐어.
말을 끊으며, 시노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현자
이건...
브로치인가요...?
시노
그래.
클로에에게 보여주면서 만들었어.
아까 막 완성됐지.
여기서 마지막 조율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잠들었나 봐.
현자
(나를 위해서 시노가 이걸...)
시노의 시선은 손 위의 브로치에 가 있었다.
마음먹은 듯 그걸 나한테 주고, 눈을 마주했다.
시노
... 너는, 나에게 빚을 갚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지만,
역시 갚게 해 줬으면 좋겠어.
현자
엣...?
시노
현자에게 훈장을 받았을 때, 너무 기뻤어.
평생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그뿐만이 아냐.
넌 현자로서 잘해주고 있어. 그 상도 제대로 받아야 해.
그러니까...
시노는 확실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거나, 오해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 그가,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하며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 하고 있다.
그게 견딜 수 없을 만큼, 감동이었다.
시노
... 도저히, 이걸 받기가 싫은가?
아니면 내가 만든 거로는 네가 받을 가치가 없는 건가.
현자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시노가 만들어준 브로치, 정말 기뻐요...!
황급히 고개를 흔든다.
아주 조금이지만, 시노에게서 안심한 듯 한 분위기를 느꼈다.
현자
고마워요, 시노.
당장 해봐도 돼요?
시노
그래.
현자
... 됐다.
어, 어때요?
시노
......
현자
시노?
시노
... 최고로 잘 어울려.
과연 나의 현자야!
신나게 웃는 시노의 모습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그 정도의 주고받음이, 마냥 기뻤다.
현자
시노.
다음에는 제 방으로 놀러 오세요.
네로에게 레몬파이를 만들어줄 수 있는지 부탁해볼게요.
같이 먹으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시노
이야기?
현자
네.
마법이라든가, 제가 모르는 걸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안 되나요?
시노와의 관계는,
친구 같으면서 친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순간 확실한 정을 느꼈다.
지금은 그것을 소중히 하고 싶다.
시노
좋은 게 당연하잖아.
기대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