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파/남

[끌어안은 빛은 흔들리고] 피가로 SSR

닉네임칸 2021. 8. 30. 21:25

함께 보고 싶은 경치 1화

 

 

 현자

 

안 되겠어, 잠이 안 와...

일단 일어나서 물이나 마시러 갈까.

 

... 응?

 

 

희미하게 노크 소리가 들린 것 같아 문을 열었다.

 

 

 피가로

 

안녕, 현자님.

 

 

 현자

 

피가로.

 

 

 피가로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어.

 

 

 현자

 

걱정이 돼서 보러 와 주신 건가요?

감사합니다.

 

왠지 눈이 말똥말똥해서요...

 

 

 피가로

 

그럼, 피가로 선생님이 잠들기 쉬운 차를 끓여줄게.

 

루틸 특제 허브차야.

몸이 따뜻해져서 금방 졸리게 될 거야.

 

-

 피가로

 

자 마셔.

뜨거우니까 조심하고.

 

 

 현자

 

감사합니다.

... 와아, 좋은 향기.

엄청 차분해지는 향이네요.

 

 

 피가로

 

그치.

졸리면 그냥 자도 돼.

 

 

 현자

 

아하하. 극진하네요.

 

 

 피가로

 

남에게 정성을 다 하는 건 싫지 않아.

그렇잖아, 난 착한 남쪽의 마법사니까.

 

그렇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니...

요즘 계속 임무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나?

 

 

 현자

 

확실히...

요즘 계속 잠이 얕았던 것 같아요.

 

 

 피가로

 

그래...

그럼 릴랙스 하도록, 잠깐 나랑 얘기나 할까.

 

자기 전에 친구들이랑 담소하는 기분으로 말이야.

존댓말도 필요 없어.

 

지금의 너는 현자님이 아냐.

나의 소중한 친구, 아키라야.

오늘 저녁에는 특히 뭐가 맛있었어?

 

 

 현자

 

오늘은 스튜인가...

하하, 아서가 굉장히 기뻐해서, 옆에 있던 오즈의 눈이 부드러웠어요.

 

 

 피가로

 

오즈 녀석.

그런 얼굴, 나한텐 전혀 안 보여줬어.

오래 어울렸는데.

 

 

 현자

 

그래요? 그래도...

 

-

 현자

 

... 쿠울, 쿨...

 

 

 피가로

 

무사히 잠든 것 같네.

다행이야.

 

 

 현자

 

... 으응...

여러분...

 

 

 피가로

 

응?

 

 

 현자

 

... 여,... 요...

 

 

 피가로

 

......

 

-

 현자

 

으응, 잘 잤다!

 

머리도 몸도 너무 상쾌해.

피가로 덕분이야.

 

-

고맙다는 말을 하러 복도로 나가는데,

타이밍 좋게 원하던 인물이 나타났다.

 

 

 피가로

 

안녕, 현자님.

 

 

 현자

 

앗, 피가로!

어젯밤엔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너무 기분 좋게 잠들었어요.

 

 

 피가로

 

그렇다면 다행이네.

잠이 오지 않을 땐 언제든 나를 의지해도 돼.

 

... 그건 그렇고 현자님.

아까 모두랑 상의해서, 너 오늘 하루 휴가 받기로 했어.

 

 

 현자

 

네?

 

 

 피가로

 

그러니 너의 휴가를 나에게 줘.

같이 잠깐 나가자.


함께 보고 싶은 경치 2화

 

 

 현자

 

와아...!

엄청 넓은 들판이네.

공기가 맑아서 기분이 좋네요.

 

 

 피가로

 

아하하.

마음에 든 것 같아서 다행이네.

 

하룻밤 잔 정도로는 연일의 피로를 풀 수는 없을 거야.

 

그러니 오늘 하루 여기서 뒹굴뒹굴 하자.

여기서 자란 식물은 피로를 풀어주는 효능이 있거든.

 

 

그렇게 말하며, 피가로가 풀밭에 드러눕는다.

나도 바로 그것을 따라 했다.

 

 

 현자

 

(피가로는 친절하네.

내가 피곤할까 봐 일부러 여기로 데려와줬어)

 

풀과 꽃 향기가 나네요.

너무 기분 좋다...

 

 

 피가로

 

나도 가끔 여기 와.

술을 마시면서, 누워서 느긋하게 지내는 걸 좋아해서 말이야.

 

아, 술 얘기는 미틸에겐 비밀이야.

 

 

 현자

 

아하하.

알고...,... 어라...

 

 

갑자기 눈앞이 아찔하다.

 

경치도 일그러져 가는 느낌이 들어, 황급히 눈을 비비니...

 

-

눈앞의 풍경은 낯익은 그리운 세계로 변해 있었다.

 

 

 현자

 

에... 어, 어째서.

피가로?

 

 

주변을 찾아봐도 피가로가 없다.

대신 예전의 낯익은 자동차 소리와 시끄러운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현자

 

(틀림없어.

여긴 내가 원래 있던 세계야...)

 

 

많은 그리운 기억들이 가슴을 찔러 눈꺼풀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무섭기도 했다.

 

 

 현자

 

(여기로, 내가 돌아왔어?

모두들... 역할을 버려두고?)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는데.

 

 

 현자

 

읏, 피가로...!

 

피가로. 제발, 대답 좀 해주세요!

피가로...!

 

 

 ???

 

... 님.

 

-

 피가로

 

... 현자님!

 

 

 현자

 

핫...!

 

 

 피가로

 

왜 그래, 괜찮아?

 

 

 현자

 

아... 네, 네...

 

(다행이다. 아까 있던 들판이야.

... 어라, 근데 어느새 저녁이)

 

 

 현자

 

혹시 저 잠들었나요?

 

 

 피가로

 

응.

누워있다가 거의 바로.

... 아까는 뭔가 가위에 눌린 것 같았어.

 

 

 현자

 

(그럼, 그런 역시 돌아간 게 아니라 꿈이었구나)

 

깨워줘서 고마워요.

사실 너무 신기한 꿈을 꿔서...

 

 

 피가로

 

... 현자님.

그 이상한 꿈은, 너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었지 않아?


함께 보고 싶은 경치 3화

 

 

 현자

 

마, 맞아요.

어떻게 알고...

 

 

 피가로

 

미안해, 현자님.

사실 여기 식물의 효과는 피로를 풀어주는 게 아냐.

 

진짜는 그 사람에게 있어 고향의 환영을 보여주는 거야.

 

 

 현자

 

고향의...

그래서 아까의 꿈을...

 

 

 피가로

 

난 네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서.

 

어젯밤에 『여러분! 원래 세상과 오가는 법을 알아냈어요』라고

잠꼬대를 했었거든.

 

 

 현자

 

......

 

 

 피가로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꿈에 나온 것 같아서.

잠깐이나마 네 마음을 위로해 주려고 여기로 데려왔어.

 

나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아니까.

 

... 근데, 괜히 참견하는 거였나 봐.

 

 

 현자

 

그, 그렇지 않아요!

놀랐지만 너무 기뻤어요.

 

... 하지만 갑자기 모두와 헤어진 줄 알고, 엄청 섭섭했어요.

 

게다가 이 세계에서 해야 할 일을 아직 이루지 못했는데,

모두를 두고 왔다는 게 불안해서...

 

그래서 아직 못 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가고요.

 

 

 피가로

 

......

 

너는... 뭐랄까, 응.

 

조금, 너무 진지한 것 같아.

 

 

 현자

 

네에...?

 

 

 피가로

 

좀 더 어깨에 힘을 빼도 된다는 얘기야.

현자님은 너무 열심히 하는 면이 있으니까.

 

의사로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앞으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휴식을 취해.

 

 

 현자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실래요?

 

 

피가로

 

좋아.

그래도 원래 세계의 그리운 경치가 아니어도 돼?

 

 

 현자

 

물론이죠, 오랜만에 원래 세계를 볼 수 있어서 기뻤어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지금은 아직 만나보지 못 한 이 세상의 풍경을

더 많이 보고 싶어요.

 

 

 피가로

 

... 그래. 현자님 다운 생각이네.

 

그럼 이번에는 아직 데려가 본 적이 없는,

북쪽 나라의 바다 풍경을 보러 갈까.

 

내가 좋아하는 경치니까, 기대하고 있어.